[칼럼] 메이플스토리 과징금과 밸런스

언론매체 월요신문

작성일 20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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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메이플스토리 과징금과 밸런스

2003년이었다. 메이플스토리에서 메이플월드 모험을 시작한 때가. 천원 오천원 열심히 모은 용돈은 메이플스토리 캐시샵(게임 내 유료아이템 판매처)으로 직행했다. 20년이 지난 2023년 크리스마스, 여전히 캐시샵을 쇼핑했다. 메이플스토리 내 확률형 아이템 '큐브'를 구매하였다. 앉은 자리에서 12월 월급이 날아갈 뻔 했다 (아름다운 것은 어찌하여 이리도 쉽게 사라지는가). 한 달 후, 13년 역사의 큐브 아이템 판매 중단 소식이 들려왔다. 2024년 1월 3일 공정위가 넥슨에 시정명령 및 116억 원 상당 과징금을 부과한 여파였다.

공정위에 따르면 넥슨은 큐브 아이템 판매에서 전자상거래법을 위반하였다. 전자상거래법 제21조제1항 제1호는 전자상거래 사업자의 거짓 또는 과장된 사실을 알리거나 기만적 방법을 사용하여 소비자를 유인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은 아이템의 종류, 성능, 효과 등이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공정위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변경은 소비자의 구매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이라고 보았다.

넥슨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큐브의 확률 구조를 구매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였음에도 이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점에서 기만적인 방법으로 큐브 구매자를 유인한 것이므로 전자상거래법을 위반한 것이다.

구체적인 위반 대상은 (1) 큐브의 인기 옵션 및 블랙큐브(큐브의 일종) 출현 확률을 하락시킨 행위(이하 '확률하락행위')와 (2) 인기 옵션의 중복 출현(이른바 '보보보' 등) 확률을 0%로 변경한 행위(이하 '출현제한행위')이다.

이에 넥슨은, 게임 밸런스 개선 목적으로 확률을 조정한 것이며 공정위가 법적으로 확률 공개 의무가 없던 시기의 사안을 위반으로 판단하였다며 공정위 판단의 부당성을 주장하였다. 공정위는 확률을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낮추고도 고지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는 것이지 확률 자체에 대한 법적 공개 의무 여부와는 관계 없다고 재반박하였다. 넥슨과 공정위는 당분간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출현제한행위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이나 확률하락행위는 공정위의 판단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 2016년까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에 대한 법적 의무나 관련 유권해석이 부재하였음에도 당시 확률 또는 그 변경이 해석의 여지 없이 당연히 전자상거래법상 공개 의무 있는 정보로 인정되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많은 온라인 게임이 정액제 방식으로 운영되었으나, 2001년 넥슨은 게임을 무료로 이용하도록 하되 게임 내 유료 아이템을 판매하는 부분유료화 방식을 시도하며 성공적인 수익모델을 창출하였다. 2004년에는 일본 메이플스토리에서 '가챠포티켓'이라는 확률형 아이템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이후 국내 메이플스토리에도 정식으로 도입되었다. 그렇게 2010년 확률형 아이템인 큐브가 등장하고 메이플스토리 매출액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로서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은 게임의 재미를 위한 본질적인 부분이자 게임 '밸런스(balance)'를 고려하며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 연구해야 하는 영업비밀로 여겨졌다.

밸런스 개선 작업(또는 '밸런스 패치')은 메이플스토리와 같은 MMORPG 게임이 롱런(long-run)하기 위한 핵심 요소다. 밸런스는 캐릭터 직업, 장비, 난이도 등 게임에 등장하는 요소 간 균형을 말한다. 메이플스토리는 MMORPG인 만큼 이용자들이 게임 내에서 일종의 소규모 사회를 형성하고 서로 캐릭터의 스펙을 경쟁하며 게임 내 빈부격차가 발생하기도 한다.

밸런스가 무너지면(또는 붕괴되면) 빈부격차 심화, 게임 난이도 불균형 등이 발생하여 이용자의 의욕을 상실시키고 기존 이용자의 이용 중단 및 신규 이용자 유입 감소로 이어져 게임사 수익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도 한다.

게임의 흥망성쇠가 밸런스 패치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플스토리는 주기적으로 밸런스 개선 작업을 진행해왔다. 특히 2010년 7월 캐릭터 직업, 육성 구조, 난이도 등을 개선하며 대규모 업데이트(이른바 '빅뱅 패치')를 진행한 이후 수차례 신규 직업을 생성하고 컨텐츠를 확장해가며 이에 대한 후속 작업으로서 밸런스 개선 작업이 집중적으로 이어져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큐브의 확률 변경은 밸런스 패치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2017년경부터 확률형 아이템의 사행성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2017년, 중국 정부에서 확률형아이템의 세부 정보 공개를 법적으로 의무화하였다.

한국게임산업협회도 2015년에는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으로 확률 공개 방법을 구간별 확률 공개(가령 확률별로 매우 낮음, 낮음, 보통으로 구분)로 제시하였으나, 2017년에 구체적인 확률 공개로 가이드라인을 변경하였다. 2018년이 되어서야 공정거래위원회는 넥슨이 운영하는 '서든어택' 게임에서 특정 확률형 아이템의 비공개가 전자상거래법 위반이라 판단하였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볼 때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은 영업비밀로 해석되기도 하였으며 그 변경은 밸런스 패치의 일환으로 본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변경 미고지가 곧바로 전자상거래법 위반이라고 보는 것은 성급한 결론일 수도 있다.

물론 넥슨이 고지 없이 큐브 확률을 변경한 것은 이용자들로 하여금 도덕적으로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 공정위는 근래 넥슨 포함 게임사들과 이용자 간 바닥나고 있는 신뢰관계까지 고려하여 넥슨에게 철퇴를 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소급적인 처분과 규제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예측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광범위한 규제는 법적 안정성을 저해하고 게임산업 시장의 위축을 야기한다. 향후 확률하락행위 제재에 대한 입체적인 논의를 기대해본다.

한편, 출현제한행위는 행위 시기나 게임 밸런스를 고려하더라도 전자상거래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 큐브 구매자로서는 당연히 여러 경우의 수 중 인기 옵션의 중복 출현을 포함하여 특정 옵션 조합의 출현도 존재할 것임을 기대할 수 있고, 인기 옵션 중복 출현은 보통의 거래 경험과 주의력을 가진 일반 소비자로서 큐브 구매자에게 중요한 큐브 구매 유인 중 하나임이 상당하다. 따라서 이러한 확률 구조 변경은 구매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보이므로 넥슨은 구매자에게 이를 고지했어야 한다고 귀결될 수밖에 없다.

기업의 변호사이기 이전에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로서 공정위가 이용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칼을 뽑아 든 것은 환영한다. 게임산업 시장의 위축은 환영하지 않는다. 어쩌면 공정위의 규제에도 밸런스 패치가 필요할 지 모른다. 어찌됐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들과 넥슨 간 신뢰관계를 다시 구축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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